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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운명과 사랑은 실재할까?

전기과 팡팡이 2019. 7. 22.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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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그의 저서 중에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군대에 휴가를 따려고 이 책에 대한 독후감을 정말 심혈을 기울여서 썼었다.

나름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로 1등에 뽑히지 못해서 안타까웠는데,

어떤 선임의 휴가를 딴 독후감을 읽고 내가 왜 뽑히지 못했는지 의문이 들어서 더욱 안타까웠던 기억이...

 


 어떤 한 사람이 자신과 다른 누군가에게 마음을 뺏겨 만난다. 그 사람과의 만남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러한 흔한 만남이 아니라 특별하고 운명적인 만남이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변수를 제외하고 단 한가지의 변수만 적용하여 생각해보자. 지구의 그 많고 많은 인구 중에서 1명을 만난 것이다. 얼마나 운명적인가? 몇 가지의 변수를 더 생각해보자. 먼저, 나는 남자이니 운명적인 만남 속에 있는 사람을 그녀라고 표현하겠다. 나와는 어떠한 연관도 찾아보기 힘든 그녀와 마주치거나 잠깐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생겨서 마음을 뺏기고 이것이 운명이라는 결론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에서 나와 그녀는 같은 시간 속에 존재해야 한다. 또한, 같은 공간 속에 존재해야 하면 서로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는 가까운 위치에 있어야만 한다. 확률로 따지자면 로또 당첨만큼이나 힘들 거라 생각한다. 여기서 작가는 과연 그 만남이 정말 운명인지 아니면 나의 착각인지, 그리고 그녀를 만나면서 우리가 대부분 겪는 갈등이 무엇인지, 왜 그런 것인지를 철학적으로 서술하였다.

 이 책에서 나오는 남자는 운명을 믿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남자는 웃기게도 비행기 안에서 생각을 바꾸고 운명이란 것을 믿게 된다. 남자는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옆 좌석에 앉은 여자와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대화를 나누었다. 단순한 호구조사로부터 두서없는 잡담을 나누는 동안에 그녀와 자신의 공통분모가 너무나도 많다고 느꼈고 운명이라 결론을 지었다. 그렇게 되고 나니 남자는 그녀의 모든 것을 사랑스럽게 여기게 되었다. 그녀의 농담들이나 외모, 행동 등 한 마디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준비가 된 것이다. 정말 말도 안 되지 않은가? 잠깐 본 사이인 그녀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가 있다니. 이것에 대한 논리적 근거라곤 찾기도 힘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만남과 현상을 운명이라 결론을 짓는 것 일거다. 그러나 작가는 이런 식으로 정의된 ‘운명’에 ‘운명이라고 믿는 착각’ 이라고 반박을 한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희망이 자기 인식에 승리를 거두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있는 것 -비겁함, 심약함, 게으름, 부정직, 타협성, 끔찍한 어리석음 같은 것-을 상대에게서 발견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사랑에 빠진다. 우리는 선택한 사람 주위에 사랑의 방역선을 쳐놓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어떻게 된 일인지 우리가 가진 결함으로부터 자유롭고, 따라서 사랑스럽다고 결정해 버린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우리 내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함을 찾으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을 통하여 인간 종에 대한 불확실한 믿음 [자기 인식에서 나온 모든 증거에 위배됨에도 불구하고]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  내용 中

 

 이를 간단히 표현하자면, 나에게 있는 단점들이 사랑하는 그녀에게는 없길 바라며 설사 있다 하더라도 애써 외면을 한다. 그리고 내가 이루지 못한 이상향 즉, 완벽함을 그녀에게서 바란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운명이란 지나가는 여자를 보고 한 순간에 봄바람이 불고 배경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믿고 싶은 나의 마음이 내 머리를 속여서 생기는 사랑이라는 감정이다. 다시 표현하자면, 내 사랑을 남들과 다 똑같은 감정이 아닌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만남이며 감정이라고 미화하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낸 추상적인 단어라는 것이다. 

 남자와 그녀는 ‘운명적’인 만남을 시작하게 된다. 둘은 함께 저녁식사를 마친 후 디저트를 먹기로 한다. 초콜릿과 카라멜,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 그녀는 전에 교제하던 남자와의 일화를 꺼낸다. 전 남자친구와는 이상하게 편하지 못 했는데 어느 순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그는 자신과 다르게 초콜릿을 혐오하는 정도로 싫어했고 그 이유로 자신과 맞지 않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헤어졌다고 말을 꺼낸 후 남자에게 무엇을 먹겠느냐고 다시 묻는다. 남자 또한 초콜릿을 싫어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초콜릿 성애자로 돌변하여 ‘초콜릿’이라 답했다.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은 닮는다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고 혹은, 실제로 닮아가는 것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왜 닮아가고 비슷해지는 걸까? 생각은 해보았나? 이 의문에서 나는 서로 좋아하니까 서로의 행동을 따라하게 되고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물론 이것도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또 다른 이유를 들려주고 싶다. ‘초콜릿’과 ‘카라멜’. 남자는 단지 여자가 초콜릿을 싫어하는 남자와 헤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초콜릿을 좋아한다고 거짓말을 한 것일까? 그 이유만으로 거짓말을 했다 하더라도 내면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운명이란 것을 모순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비행기에서의 만남을 통해서 운명을 믿게 되었고 그녀의 모든 것이 자신과 잘 맞는다고 믿고 있었는데 겨우 ‘초콜릿’ 때문에 운명이란 믿음이 깨져버리면 얼마나 허무한가? 누가 초콜릿 하나로 봄바람이 아닌 비바람을 맞고 싶겠는가?

  방산의 일각이라 하지 않는가? 운명이라는 표면 위에 모순을 껴안고 시작한 둘은 빙산의 나머지 부분이 서서히 표면 위로 드러나면서 운명 같은 만남은 지속되지 못 하고 처참하게 끝이 난다. 그녀가 바람을 피웠다는 고백을 통해서. 남자는 큰 절망에 빠져 자살 시도를 하지만 실패를 하고 평소와 같은 삶을 이어간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 운명을 믿게 만들어준 그녀의 향기가 거의 다 날아갈 때 즈음 남자는 새로운 운명을 마주하게 되면서 책의 끝을 맺는다.

 

그들은 마치 메시아적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을 마주한 무신론자처럼 세속적이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앞에서 나는 운명이란 우리가 자신의 사랑을 미화시킨 것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그렇다고 해서 각자의 만남들이 특별하지 않다고 하지는 않았다. 백 쌍의 커플이 있으면 백 가지의 각기 다른 이야기가 있고, 천 쌍의 커플이 있다하더라도 천 가지의 각기 다른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그 끝은 착각 속에서 빠져 나왔느냐, 그렇지 못 했느냐 이 두 가지로 나뉜다. 사랑의 시작은 운명이 존재한다는 착각으로 시작이 되고, 만남의 과정은 관계가 깊어지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적으로 특별해지는 것이며, 만남의 끝까지 특별함이 지속될 것이라는 착각에서 빠져나와야 된다.

이 세상의 전부라 여겼던 그녀가 떠났다는 것 때문에 남자는 자살을 선택하여 가라앉게 된다. 사랑을 잃어버려 자살을 선택한다는 것은 소설이란 특권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닌 실제하고 있는 사실이다. 사랑 때문에 극단적인 결과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미로를 못 빠져나온 사람들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에게 사랑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서 내 글을 읽어보면 언제나 민망함은 내 몫인 것 같다...

주변 사람이 책 추천해 달라하면 가장 먼저 추천해주는 1순위 책이라 꼭 읽어보세요 ㅠㅠ

정말 재밌어요.